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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 리제르양의 초상
< 리제르양의 초상 > 1917 @ Auktionshaus im Kinsky GmbH, Wien / @ Auction house im Kinsky GmbH, Vienna.

 

 100년간 행방이 묘연했던 <리제르양의 초상> 세계인의 눈앞에 나타나다. 

100년 동안 사라졌던 <리제르양의 초상>.  이 매혹적인 그림이 최근 홀연히 나타나 오스트리아는 물론 유럽 예술계를 사로잡으며 들썩이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의 경매회사 '임 킨스키(Auction house im Kinsky GmbH, Vienna)'에서 4월 24일(24년) 경매를 앞두고 소수의 컬렉터와 일부 미디어에 선공개되었습니다.

 

19세기말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문화 혁명가, 오스트리아 빈의 모더니즘을 이끈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황금의 화가"로 화려한 색감과 유려한 선 그리고 매혹적인 피사체들과 삶과 죽음에 대해 56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클림트가 1918년 사망 후 8년 뒤에 1926년 5월 오스트리아 노이에(Neue) 갤러리에의 전시회를 끝으로 그림의 행방은 이후 묘연했습니다. 오스트리아 미술계에서는 '영원히 사라진 것'으로 간주했었습니다. 클림트가 사망한 후 오스트리아는 나치 정권의 탄압과 전쟁으로 암울한 시기를 보냈고, 다수의 클림트 그림이 해외로 반출, 훼손되거나 경매에 부쳐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럽의 예술계가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훼손되거나 해외 반출됐을 거라 생각했던 그림을 오스트리아의 한 가문이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이고, 두 번째 이유는 지난해(23년) 경매에 나왔던 <부채를 든 여인>에 의해 세워진 이전 유럽 회화 경매 최고가 1413억 원의 기록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100년간 어디에 가있었을까요? 1926년 클림트 회고전을 마친 뒤 이 그림은 리제르 가문의 한 별장에 걸려 있었습니다. 먼 친척으로부터 2년 전 이 그림을 물려받은 현 소유자는 "기억하건대, 1965년부터 그 집의 거실에 걸려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경매에 나오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0월 23일 오스트리아 연방 기념물 당국으로부터 그림 수출에 대한 허가를 발급받고 나서야 경매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부채를 든 여인&#44; 클림트
<부채를 든 여인 (Lady with a Fan)> 개인소장

 

 초상화 속 주인공들은 누구일까? 

누가 <리제르양의 초상> 속 주인공일까? '프로일라인'은 오스트리아어로 '젊은 숙녀'를 의미합니다. 확인된 모델 리제르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군주를 대표하는 영향력 있는 기업가 가문 출신입니다.

 

오스트리아 최초의 기계식 섬유, 방직 공장을 운영하던 리제르 가문의 '릴리'라는 여성은 '빈의 뮤즈' 알마 말러(작곡가, 빈의 유명한 팜므파탈)의 친구이자 유명한 예술 후원자였습니다. 초상화 속 '리제르'는 릴리 리제르의 두 딸 헬레나 또는 애니일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20세 미만의 나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 경매에서 1413억으로 낙찰된 <부채를 든 여인>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하자면 1918년 2월에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할 당시 그의 작업실 이젤에 걸려있는 작품입니다. 사망 당시 여러 점의 초상화 등 작품을 계속했지만 마지막으로 완성시킨 작품으로는 이 작품이 마지막입니다.

 

소더비는 클림트의 이 작품을 "마지막 걸작"이라고 불렀고, 이브닝 경매장의 인상파 현대 미술 판매 책임자인 토마스 보이드 바우먼 Thomas Boyd Bowman은 경매를 앞두고, 그저 놀라울 따름이라며, 익명의 모델의 피부를 활기차게 만드는 파란색과 분홍색 반점, 속눈썹의 깃털 선, 얼굴에 개성을 부여하는 오므린 입술, 아름다움과 관능미는 초상화 세부 장식에 대해 의미 부여를 했습니다.

 

이 작품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여성을 모델로 그린 것으로 한 손에 부채를 들고 기모노 느낌이 느껴지는 디자인의 복장을 해 작품 전반에서 느낄 수 있는 당시 유럽 전반에 걸쳐 유행했던 일본풍(Japonism)의 의상과 소품이 보이고 동양적인 분위기가 좀 독특합니다. 불멸이나 환생을 상징하는 불사조와 사랑을 의미하는 연꽃 등 중국풍의 소재도 가미해 신비하고 묘한 분위기를 더해줍니다.

 

 <리제르양의 초상> 미완성작이지만 걸작이라 평가받는 이유 

클림트의 출판물 기록에는 초상화 주인공의 실명 대신 'the sitter(앉아있는 사람)' 정도로 되어 있었습니다. 완벽주의로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는 섬세한 창작 프로세스로 유명했습니다. 

 

초상화의 모델은 1917년 4~5월 사이에 9회에 걸쳐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했습니다. 중요한 건 이 그림엔 클림트의 사인이 없습니다. 초상화를 완성할 때 배경을 가장 마지막에 완성하는 클림트의 특성상 전문가들은 "<리제르양의 초상>은 ‘미완성’이다”라고 보고 있습니다.

 

머리, 얼굴, 손 등은 완벽하게 완성돼 있지만 그가 서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배경을 좀 더 정교하게 처리하고 싶었던 뜻이라 생각됩니다. 이 그림을 위해 그렸던 25장의 스케치에는 앉은 자세, 옆으로 돌려 앉은 자세 등 다양한 포즈와 구도로 습작을 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 그림을 위해 그렸던 25장의 스케치에는 다양한 포즈와 구도로 습작을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예와 장식미술에도 심취해 있던 클림트는 이 초상화에서 섬세하고 대담한 선을 사용해 부드럽게 흐르는 윤곽선을 만들어 전신에 걸쳐 리듬감 넘치는 윤곽을 만들어냈습니다. 정면을 바라보는 포즈의 초상화는 당시 다른 초상화에서도 보기 힘든 구도입니다. 

 

배경은 반짝이는 붉은색으로, 얼굴의 뺨 역시 붉게 물들여 눈가와 머리칼의 푸른 색조와 대비되는 보색을 과감하게 사용했고, 화려한 붉은 오렌지색 배경과 어깨에 두른 숄의 푸른 색상은 클림트의 후기 그림이나 초기 작품에서 아주 보기 드문 색상입니다.

 

또 이 여인이 입고 있는 옅은 녹색의 드레스 역시 기존 클림트의 팔레트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색입니다. 초상화 속 얼굴 특징은 아주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우아하게 구부러진 눈썹과 입술의 관능적인 형태와 눈동자의 반짝이는 모습 등은 '황금시기'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프로일라인 리제르양의 초상'이 다시 무대에 등장할 때, 오스트리아인들이 국보처럼 생각하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이어서 뿐만 아니라 100년 동안 숨겨진 미스터리를 안고 있기 때문에 이번 경매는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유럽 예술 역사를 재정의하고 초상화의 세계에서 클림트의 불멸한 지위를 재확인할 역사적인 사건이 될 것입니다.

 

'황금 화가' 클림트에 대해 더 알아봅니다.

 

황금의 작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

클림트는 작품에 왜 황금색을 사용했을까? 구스타프 클림트 황금의 화가 화려한 색감과 유려한 선 그리고 매혹적인 피사체. 19세기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예술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56년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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