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 일본에 한류열풍을 일으킨 김명국과 <달마도>

<달마도> 17세기에 제작.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조선시대에 일본에서 한류열풍을 일으켰던 '신필' 김명국  

400년 전 조선에 술 없이는 절대 붓을 들지 않는 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김명국(1600?~1663?). 어찌나 술을 끼고 살았는지 스스로를 취한 노인 '취옹'이라 불러달라 했을 정도였습니다. 이 화가는 술에만 취하면 그림 신이라도 내린 것처럼 순식간에 그림을 완성해 내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술에 취했을 때의 그를 신이 내린 붓 '신필'이라고 극찬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바다 건너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그가 술 김에 그린 그림들이 도대체 어떻게 큰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요?

 

1636년 조선통신사 사절단이 일본에 당도합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절단인 만큼 대단한 인물들이 이 사절단에 포함되었습니다. 수백 명에 달하는 수행원 가운데는 김명국도 있었습니다. 그가 조선통신사로 일본 파견 당시 그의 임무는 첫째, 일본의 지형과 생활 모습 그리기  둘째, 조선의 우수한 문화 전파를 위해 현지인들이 원하는 그림 그려주기였습니다.

 

그가 일본에 도착하자 일본의 학자와 문인들은 그의 집 앞에 줄을 섰습니다. 붓을 몇 번 휘두르기만 하면 완성되는 그의 그림 퍼포먼스를 보려고 일본 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결국 밤낮으로 그림을 그리던 화가는 너무 지쳐서 울음을 터뜨렸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글씨와 그림을 청하는 왜인들이 밤낮으로 모여들어 김명국은 밤 잠을 못 이뤄 울려고까지 했다."

- 김세령 통신사 부사 <동명해사록> 1636년

 

그 당시 일본에서는 선종화가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선종화는 <달마도>처럼 불교의 한 갈래인 선종의 이념과 그와 관련된 설화 속 등장인물을 주로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 달마도> 또한 일본 통신사로 건너간 시절 그곳 사람들의 요청에 술을 마시고 그렸던 그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명국은 이 달마를 그릴 때 옷은 굵직한 선으로 뚝뚝 꺾어 표현했지만 근심으로 가득해 보이는 표정은 옅고 섬세하게 그려 대비가 되게 그렸습니다. 몇 가닥의 선만 그렸을 뿐인데, 순식간에 종이 위에 나타난 달마를 보면서 일본인들은 실제 달마를 만난 듯한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밑그림 하나 없이 대담하게 그어 내려간 붓놀림에서 달마의 모습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신의 경지라 놀라워했습니다. 이렇게 최소한의 절제된 선만으로 수정이나 덫을 없이 그리는 것을 간필법이라 부르는데 이건 김명국의 특기이기도 했습니다.

 

호방했던 김명국의 성격만큼이나 시원시원한 목선으로 그려낸 그림이지만 이 달마도는 담아야 할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달마의 고민을 드러내는 표정과 호방한 선으로 표현된 숭고한 깨달음, 그리고 달마 위로 펼쳐진 여백을 통해 달마의 사유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신필 그림 속에 들어있는 귀신이다"  

 

최근에는 김명국의 새로운 <수노인도>가 일본에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통신사 화원으로서 김명국이 일본에 남긴 실물 증거가 나온 셈입니다. 일본에서 김명국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김명국 같은 사람을 보내달라며 공식적인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김명국은 두 번이나 조선통신사를 다녀온 유일무이한 화원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김명국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라서 두 번째 통신사부터 20년이 흐른 후에도 일본 사신이 부산으로 찾아와 김명국의 작품을 또 사고 싶어 했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그렇게 일본에서는 신이 내린 천재인 듯 팬을 몰고 다닌 김명국이었지만 다시 돌아온 고향 땅에서는 그만큼 인정해 주질 않았습니다. 평민 출신이었고 품행이 단정치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괴리감 때문에 김명국이 술을 더 찾았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달마대사'는 누구인가? 

달마는 중국 남북조 시대에 불교의 선종을 창시한 인물입니다. 그는 원래 인도의 왕자였습니다. 본명은 '보디다르마' 남인도 파사국 향지국의 셋째 왕자. 부처의 가르침을 전파하려 중국으로 건너가 한 절에 자리에 자리를 잡습니다. 바로 우리에게도 유명한 소림사 쿵후의 탄생지로 유명한 그 소림사입니다.

 

실제로 역사가들은 쿵후가 달마대사의 수련법 중 하나에서 만들어졌다 보기도 합니다. 달마대사는 이 소림사에 머무르며 약 9년간 수련을 하는데 이때 달마가 했던 것은 면벽 수련입니다. 달마를 그린 그림들을 보면 유독 부리부리하고 크게 그려진 눈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달마가 수행 중에 잠이 몰려오자 눈꺼풀을 뜯어버렸다는 설화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눈꺼풀을 버린 자리에 풀이 자라자 달마는 이것을 물에 달여 마십니다. 그러자 신기하게 정신이 맑아져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차의 기원이라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후 달마는 9년간의 수련 끝에 득도하게 됩니다. 달마는 경전을 달달 외는 것보다 스스로의 마음과 본성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았습니다. 지금 이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 이것이 달마가 깨달은 이치였습니다. 그리고 달마는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참선 수행을 중시했습니다.

 

이는 스스로를 돌아봐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르는 선종불교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달마의 제자들은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달마를 그리는 것을 수행의 일부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수행의 목적으로 많은 달마 그림을 남겼는데 수많은 달마 그림들을 보다 보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달마도의 가장 큰 공통점이라 한다면 우선 달마의 험상궂은 표정이라 할 수 있는데 보통 부처와 보살 등 불교 그림들 속 표정을 떠올려보면 달마의 표정은 독특합니다. 이러한 달마의 매서운 표정 덕분에 예로부터 달마도는 귀신과 불행을 쫓는 부적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조선에서의 김명국에 대한 평가는 일본과 왜 달랐을까? 

그는 항상 취해 있었습니다. 술 없이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연못을 뜻하는 '연담'이라는 호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것 대신 술에 취한 늙은이라는 뜻의 '취옹'이나 술에 미친 사람이라 하여 '주광'으로 부를 정도였습니다. 

 

김명국은 어떤 가문 출신인지도 알 수 없는 중인 신분이었지만 붓놀림 하나로 시대를 평정한 실력자였습니다. 그와 관련한 기록들을 보면 그가 그린 자유분방한 선들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인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심지어는 왕 앞에서도 그의 기행은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어느 날 인조가 김명국을 불러 공주가 쓸 빗에 그림을 그리라 명합니다. 하지만 열흘이나 지난 후 김명국이 다시 가져온 빗에는 아무런 그림도 그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황당무계한 행동에 왕이 분노하자 김명국은 분명 그림을 그렸으니 내일이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라고 대답을 했는데 다음 날 공주가 빗을 쓰려다가 이가 두 마리 붙어 있어 손톱으로 눌러 죽이려고 보니 그게 김명국이 말한 그림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 일로 김명국의 이름이 조선 팔도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왕의 명령에도 기가 죽지 않는 대범함이나 공주의 빗에 이를 그려놓는 재치가 지금 생각해도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싶은데요. 당대 활동했던 모든 화가가 이렇게 괴짜스러웠던 건 아닙니다.

 

아버지는 왕족이었지만 어머니의 신분이 천해 서자로 태어난 '이징'이라는 화가는 왕실에서 오랫동안 따라온 전통적인 화풍을 따라 보수적인 취향의 왕족과 사대부들에게 두루 사랑을 받았습니다. 김명국도 이처럼 도화서 화원으로 오래 일했기 때문에 비슷한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명국은 낮과 밤이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낮에는 왕을 위해 조신하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더라도 퇴근 후에 양반들에게 그림 요청을 받으면 그가 만족할 만한 술상을 내어주지 않는 한 절대 붓을 잡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니 김명국의 작품 속에 경쾌하고 대담한 붓질에서 어딘가 술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사실 그에게 술은 이미 뛰어난 재능에 부스터를 달아줄 때도 있었지만 너무 과할 때는 망작을 만드는 독이 되기도 했습니다.

 

김명국의 <기려도>

 

김명국의 작품을 살펴보면 그가 어느 정도까지 취해 있을 때 그림을 그린 것인지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김명국은 나귀를 타고 가는 사내(기려도)를 여러 차례에 걸쳐 그렸습니다. 그가 가장 알맞게 취했을 때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왼쪽의 작품은 다리와 나귀, 그리고 인물 모두 섬세한 묘사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주변 겨울나무들과 산은 자유분방함을 넘어서 취기가 느껴질 정도로 어지럽게 그려졌습니다. 이처럼 치밀한 가운데에서도 객기 넘치는 필치의 조화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던 김명국만의 개성이었던 겁니다.

 

반면 만취 상태로 그린 그림의 예시로는 오른쪽 <기려도> 들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얌전한 그림 같지만 나귀를 자세히 살펴보면 앞다리와 뒷다리의 움직임이 맞지 않아 어색합니다. 배경도 아무렇게나 휘둘러 처리하는 바람에 인물과 산수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술은 김명국에게 창작의 촉매제로 걸작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역효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조선의 한 그림 평론가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독창적인 경지를 이룬 것은 김명국 앞에도 없고 김명국 뒤에도 없고 오직 김명국 한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 어지럽고 들뜬 듯한 결함이 많았다. 이것이 그의 단점이라 할 것이다. 그러니까 김명국은 술 때문에 용을 그려낼 수도 있었지만, 또 그 때문에 지렁이에 그치기도 했다"는 평이었습니다.

 

술을 마셨을 때만 그림 솜씨를 발휘한 조선화가의 이단아 김명국. 술에 취했을 때는 다른 존재가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이 세상이 아닌 듯한 경지가 느껴집니다. 조선 땅을 넘어 해외 팬덤을 거느릴 만큼 호탕하고 독특한 개성이 넘쳤던 김명국 그림들 조선에 그와 비슷한 인물이 또 있습니다. 바로 오원 장승업입니다. 다음 글은 장승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명국과 비슷한 삶을 살았던 조선말기 화가 장승업의 삶도 알아보세요.

세상을 살고 싶은대로 살다간 자유로운 영혼 오원(吾園) 장승업